조현병: 비밀이 아닌 이야기 - 1 [영화]

2024. 9. 8. 00:28인생 이야기

친했던 초등학교 동창이 있다. 

도통 이유는 모르겠지만, 별명이 똥가루였기 때문에 파우더라고 지칭하겠다. 

너무 어려서 인지를 하지 못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파우더는 아동학대를 당하고 있었다. 

 

3시에 수업이 마치고, 어린이 걸음걸이로 그의 집까지 약 20분이 걸렸는데, 파우더의 아버지는 3시 15분부터 친구 집 앞 골목길 어귀에서 파우더의 어린 동생을 데리고 밖에 나와 계셨다. 친구와 집으로 향하는 방향이 같아 그 장면을 몇 년간 보아왔던 나로서는 지금도 그 모습이 선하다. 작은 체구에 늘어난 런닝셔츠에 후줄근한 반바지를 입고 부스스한 곱슬머리의 친구의 아버지가 파우더와 나이 차 많은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서 계시는 그 모습이. 

 

어린 나의 눈에는 그냥 아버지의 마중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감시였다. 

파우더가 만약 하교 후 놀이터에서 논다든가, 다른 친구집에 놀러가 노느라 그 시간까지 나타나지 않으면 이를 꽉 물고 무서운 얼굴로 집에 돌아간 후, 파우더가 귀가하면 늦게 돌아왔다는 죄로 두들겨 패곤 하셨다. 그래도 남의 눈을 의식하셨는지 아이의 얼굴은 가만히 둔 채 팔뚝, 등, 허벅지, 엉덩이 위주로 폭력을 가했다. 그럼 다음 날 파우더가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어제 아버지에게 맞았다며 팔뚝, 허벅지에 든 멍을 보여주며 은근 놀자고 먼저 제안한 친구를 탓하고는 했다. 

 

그 시절에는 부모님, 선생님 말씀이 하늘과 같았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것이 학대인지도 모른 채 그저 먼저 놀자고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전하고는 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집에서 가져온 사탕따위를 몰래 파우더의 책상위에 올려두기도 했다. 하교 시간이 3시, 그리고 놀이터에서 오래 놀아봤자 고작 1~2시간 이었다. 그 시절에는 5시만 되어도 동네에서 맛있는 밥 짓는 냄새가 진동하고, 엄마들이 "누구야! 밥 먹어라!" 하면서 아이들을 찾으러 놀이터로 오는 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에 더 또렷히 기억할 수 있다. 그렇게 하교 후 놀다 귀가한 것이... 그렇게 작고 어린 아이를 흠씬 두들겨 팰만큼 그리도 잘못한 것이었을까.  

 

짐작 가겠지만, 파우더의 아버지는 일을 하지 않으셨다. 파우더의 어머니가 혼자 미용실을 운영하시며 아침부터 밤까지 일을 하시며 시어머니까지 봉양하고 있었다. 대신 시어머니는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셨다. 가끔 파우더의 집을 지나가면서 파우더 있나? 하고 슬쩍 대문 사이를 보면, 항상 할머니가 엎드린 자세로 마루를 열심히 닦고 계셨다. 파우더의 할머니는 삼시 세끼 신선한 재료로 맛있는 식사를 차려내셨고 부지런히 청소를 하셨다. 그렇게 나의 친구는 따뜻해 보이는 가정 속에서 생계의 책임을 진 어머니의 방임과, 아버지의 학대 속에서 자랐다. 그래도 파우더는 밝았고, 공부도 썩 잘했으며 꽤 모범생으로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우리는 같은 중학교를 진학했다. 반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친했던 우리는 거의 매일 등하교를 같이 했고 종종 쉬는시간마다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시험 기간에 같이 공부를 하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었다는 것과 반이 달라졌다는 것 외에는 변한 것이 없었다. 초등학교보다 늦어진 하교시간 만큼 마중 시간도 뒤로 밀렸을 뿐, 그리고 파우더의 나이차 많이 나던 동생의 키가 조금 자란 것 외에는 여전히 친구의 아버지는 매일 그 골목길 어귀에 친구를 기다리며 서계셨다. 그렇게 사춘기의 나날들 속에 파우더는 여전히 밝고, 중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는 내향적이고 참한 그런 학생이었다. 

 

그것이 시작된 것은 중학교 3학년이었다. 

친구와 같은 반이었던 다른 동창이 나에게 말을 해주었다. 

"아니, 파우더 걔 있잖아. 걔 이상해. 언제부턴가 걔 성적도 졸라 떨어지고 혼자 중얼중얼 해서 애들이 뭐? 뭐라고? 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막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 화장실로 뛰어가질 않나.... 오늘은 수업시간에 갑자기 아악! 제발 그만하라고! 좀 내버려둬! 하고 소리지르다가 뒤로 넘어진거야. 여자애들 무서워서 막 비명 지르고 난리났잖아." 

 

"어? 파우더가?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파우더에게 일어난 심상치 않은 일을 소화도 하기 전에 이 소문은 그 달의 식단표 메뉴보다 더 빠르게 퍼져 내향적이고 조용했던 파우더는 학교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리고 파우더가 결석하는 날들이 잦아졌다. 파우더의 집에서는 굿하는 소리가 연신 들렸고, 남말하기 좋아하는 동네 아줌마들은 모이기만 하면 미용실 집에 애 귀신 씌였다며 수근수근 대기 시작했다. 미용실의 단골 손님이었던 아줌마들은 파마약을 바른 채 교회에 나오라는 둥, 누구 스님이 용하시다는 둥 저마다의 방책을 아주머니의 의사와 상관없이 퍼부어대었다. 

 

파우더가 거의 한 달째 결석을 했던 날, 나는 또 파우더의 집에 전화를 했다. 

웬일로 그 날 파우더가 전화를 받았고 나는 파우더에게 아무 일도 없는 듯 근황을 물었다. 

"야! 어떻게 지내? 학교 왜 안 나와?" 

"너 내 소식 못들었구나. 나 요새 몸이 좀 이상해서 학교 쉬고 있어."

"왜... 무슨 일인데?"

"나 좀 이상해. 자꾸 목소리들이 들려. 남자랑 여자인데, 자꾸 끊임없이 말을 걸어. 가끔은 정말 머리가 깨질 만큼 소리를 질러대기도 해. 가끔은 형체도 보여."

"병원 가봤어?" 

"응. 정신분열증이라던데...(당시에는 조현병이 정신분열증이라고 불렸다.), 딱히 병원이 도움이 되는 것 같진 않아. 그냥 약 먹고, 의사선생님이 목소리가 들려도 그냥 무시하고 걔네들하고 대화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 그런데 목소리가 이렇게 들리는데 무시하기도 쉽지 않네."

"그렇구나..."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작스레 일어난 재앙 같은 일에 내가 뭐라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나는 양반이야. 내가 다니는 병원에 환자들이 진짜 많은데, 어떤 아줌마는 눈만 감으면 호랑이랑 여자 귀신이 보인다고 그러고, 어떤 아저씨는 망나니가 자꾸 주위에서 칼춤추고 다닌다고 그러더라고. 막 진료 기다리다가 비명 지르고 난리도 아냐 거기. 난 진짜 양반이라니까 ㅎㅎ"

 

내 친구는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밝았다. 

 

그렇게 어찌어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결국 파우더와 헤어지게 되었다. 파우더집에 전화를 걸어도 파우더는 자주 부재 상태였고, 그 고등학교에 진학한 다른 동창으로부터 파우더가 어느 날 자꾸 머리 짧게 자르라는 목소리에 머리를 엄청 짧게해서 왔다더라, 파우더가 체육시간에 허공에 팔을 휘저으며 소리를 지르더라 하는 이야기들을 전해 주었다. 증세가 더 악화된 파우더는 결석과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결국 자퇴에 이르렀다.  

 

그것이 조현병이었다. 

 

공부를 꽤 잘했던 파우더는 수년이 걸려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모 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했으나 또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 결국 자퇴하였다. 성실하고 똑똑했던 파우더는 마트, 다이소, 편의점, 동네 빵집, 슈퍼마켓 진열 등 아르바이트를 전전했으나 금방 해고되기 일쑤였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종종 근황을 나누던 나에게 "너, 내 뒤에서 나 죽여버린다 그러고 졸라 씹었다매? 너 인간도 아니라매? 와 같은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학 시절 오밤중에 "결혼 축하해! 너는 근데 학교에 졸업하려고 가는거야?" 라는 이해할 수 없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자신의 상황을 또렷하게 인지했던 파우더는 점점 망가지며 일상적인 대화가 안되기 시작했고, 호리호리했던 몸이 어느 새 90kg대의 거구가 되어 있었다. 

 

지금까지도 난 파우더에게 일어난 일을 믿을 수 없다. 그토록 멀쩡했던 아이가 대체 왜.... 그리고 파우더가 이야기 했던 그 조현병이라는 것도 나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의사 말대로 그냥 목소리가 들리는 걸 무시하면 어떨까? 아니 대체 뭐가 어떻게 보이고 들린다는 거지? 

 

친구의 사주도 보았지만, 조현병의 케이스는 처음이라... 몇가지 불리할 수 있는 특징을 제외하고는 사실 가늠하기가 어렵다. (혹시 이에대해 논의하고 싶은 역학러들이 있다면 댓글 남겨주면 오픈채팅을 파서 이야기를 나눠도 좋을 것 같다.) 

 

그러다가 우연히 "비밀이 아닌 이야기 (2020)"을 보게 되었고, 나는 비로소 친구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영화 주인공인 '애덤'이다. 요리사를 꿈꾸는 청년이자 조현병 환자다.

 

애덤의 조현병 속 허구의 친구들. 보디가드, 평화주의자 그리고 시크한 캐릭터이다.

 

 

실제 조현병에 걸렸던 친한 친구가 있었기에, 이 영화에 대해서 더욱 할 말이 많다.

이것은 다음 포스팅에다 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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